누마즈(沼津市) 우시부세야마공원(牛臥山公園) 서쪽 끝에 자리한 오오야마 이와오(大山巌)의 별장터(大山巌別荘跡)

2023. 8. 9. 00:00시즈오카 누마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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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시부세야마공원(牛臥山公園)을 찾았을 때 꼭 들르고 싶은 곳이 있었다. 공원의 가장 서측에 위치한, 우시부세야마의 일부를 깎아 낸 도로를 걸어가면, 마치 비밀공간이라도 되는 듯이, 삼면이 산으로 막힌 사면이 눈에 들어왔다. 화장실이 있긴 하지만 구태여 동측 입구 가까이 있는 화장실을 두고 이 곳까지 발걸음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었고, 잠시 그늘을 가릴 수 있는 정자 또한 공원 중앙에 위치해 있어, 이 곳은 마치 우시부세야마 공원 내에서도 또 다른 공원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일견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이 곳은, 옛날 메이지 유신의 원로인 오오야마 이와오(大山巌)의 저택이 있었던 곳이다. 누마즈는 근대에는 일본 황실을 비롯한 귀족들과 정계 인사들의 별장지였는데, 소가 엎드린 형태를 하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우시부세야마(牛臥山)의 가운데, 주변 해안가와도 분리되어 있는 이 곳은 별장지로서는 탁월한 자리라고 할 수 있다. 오오야마 이와오는 본래  사츠마번(薩摩藩) 출신답게 보신전쟁(戊辰戦争) 때는 도막파의 일원으로서 종군하였으며, 이후 세이난 전쟁(西南戦争) 때는 관군의 편에서 친척 관계인 사이고 다카모리(西郷隆盛)에 대적하였다. 그 이후로 청일전쟁(日清戦争)과 러일전쟁(日露戦争) 등에서 종군하였으며, 이후 일본 육군 원수의 자리까지 오른, 일본 근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별장은 일본식과 서양식이 접합된 목조 건물이었는데, 건물의 노후화에 따른 붕괴 우려로 인해 1994년에 철거되어, 지금은 안내판 이외에는 별다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지금의 토치기현(栃木県) 나스시오바라시(那須塩原市)에 있던 그의 또 다른 별장이 오오야마 기념양관(大山記念洋館)이라는 이름으로 현지정문화재로 지금까지 그 모습을 이어오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안내판에 남아있는 당시의 사진을 보면 소박하고도 멋드러진 모습이 인상적인 건물이었는데, 비록 역사적 가치가 있을지라도 이미 손을 쓸 수 없게 된 건물을 마냥 내버려 두기에도 곤란하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보존이 되었더라면 하는 생각을 하니 문득 가뉴도에 있는 누마즈시 문화재수장고(沼津市文化財収蔵庫)가 떠올랐다. 마찬가지로 한동안 관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지금은 출입조차도 불가능한데, 철거비용 등을 생각해 보면 한동안은 그 상태로 남아 있기는 하겠지만, 한편으로 언제 모습을 감출 지도 모를 일이니, 누마즈시의 역사를 후세에 알리기 위해서라도 별도의 조치가 필요하리라는 생각을 감출 수가 없었다.

 

 

바다를 바라보면, 코하마해안(小浜海岸) 너머로 멀리 오세자키(尾瀬崎) 곶이 정면에 들어왔다. 바다 방향으로 계단이 나 있어 해안가에도 가 볼 수 있는데, 이 곳은 쇼와 시대의 문학가 이노우에 야스시(井上靖)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내 어머니의 연대기(わが母の記)의 촬영지였다고 한다. 감독인  하라다 마사토(原田眞人)는 누마즈시 출생이며, 원작자 이노우에 야스시 또한 유년기의 한 때를 누마즈시에서 보냈으니 여러 모로 누마즈시와 연관이 깊은 작품인데, 영화가 2012년에 발표되었으니, 그 때의 풍경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고, 해안가의 모습은 조금 차이가 있을지라도, 드넓은 오쿠스루가 만의 풍경은 오오야마 이와오가 이 곳 별장을 찾았을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도 분명 이 바다를 바라보았을 터인데,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근대시기의 혼란한 역사를 함께한 거물도 지금은 별장과 함께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아 있지만, 이 풍경은 앞으로도 한동안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드넓은 누마즈의 바다가,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아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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