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0. 30. 00:00ㆍ일본일상
할로윈을 앞둔 주말의 시부야, 오후가 되자, 경찰 버스와 함께 수많은 경찰들이 시부야에 모여들었다. 역 인근의 도로는 일제히 통제되었고, 인도 또한 일부 구역은 진입 금지가 되어 있었다. 많은 이들이 당황한 듯이 보였고, 일부는 경찰들에게 사정을 묻기도 하였다. 평소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시부야에,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도로 통제는 차도를 통제하는 대신, 횡단보도를 열어두었지만, 인도는 사람들로 가득 차서, 걸음을 옮기기가 힘들 지경이 되어 있었다. JR히가시니혼(JR東日本) 시부야역(渋谷駅)의 북쪽, 도쿄메트로(東京メトロ) 긴자선(銀座線) 시부야역의 입구와 함께, 토큐선(東急線) 및 한조몬선(半蔵門線), 후쿠토신선(副都心線) 등 도쿄메트로의 여타 노선으로 향하는 지하도의 입구가 자리하고 있는 미야마스자카(宮益坂) 인근은, 수 많은 철도역에서 빠져나온 사람들, 그리고 각자 갈 길을 가야 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기에, 가까운 거리임에도 이동하기에는 평소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주말이라고는 하여도 할로윈까지는 수 일이 남아 있었는데, 벌써부터 이렇게까지 본격적으로 나오는 것은 공권력의 낭비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소수이기는 하나 군데군데 가장을 한 사람들이 보였기 때문에, 평소보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주말인 이상 어떤 식으로든 어느 정도의 조치는 필요할 것이었다.
왜 이렇게 심각한 혼잡 상태가 되었는지, JR히가시니혼의 시부야역으로 향하는 길에서 알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기준으로, 개찰로 향하는 구간이 막혀 있었고, 경찰들은 연신 사람들 통제에 여념이 없었다.
JR히가시니혼의 시부야역으로 향하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기는 하나, 그 중에서도 하치코 광장(ハチ公広場)으로 이어지는 구간에서의 통제가 이루어졌던 탓에, 수 많은 사람들은 도로에 접한 좁은 인도로 몰리게 되었고, 통행 흐름이 막히지 않게끔, 두 줄로 나뉘어 이동하도록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인도를 따라 가면 눈앞에 JR히가시니혼(JR東日本) 시부야역(渋谷駅)의 하치코 개찰(ハチ公改札)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고가 아래 인도가 통제되고 있었다. 즉 하치코광장과 스크램블 교차로로 갈 수가 없게 되었기에, 이 일대를 오가는 사람들은 오로지 개찰만을 이용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치코 개찰 내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는데, 하치코 개찰임에도 하치코 광장 측의 셔터가 내려가면서 하치코 광장에서의 접근이 불가해진 것이다. 본래는 개찰을 둘로 나누어, 하치코 광장 측의 일부 개찰을 이용하여, 하치코 광장에서도 개찰로 진입할 수 있도록 하였으나, 나중에 다시 변경한 듯 하였다. 하치코 광장에는 사람들이 가득한데도 곧장 개찰로 향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여간 불편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하치코 광장 방향으로 이동할 방법이 아예 없지는 않았는데, 최단 거리로는 도쿄메트로 긴자선 개찰의 반대 방향의 시부야요코쵸(渋谷横丁)가 접하고 있는 인도를 따라서 우회하는 방법이 있었으나, 사람들이 몰리는 바람에 고가 아래 인도는 극심한 정체를 보이고 있었기에, 한 걸음씩 천천히 이동할 수 밖에 없었다. 다행이라면, 이동 방향에 따라 인도가 이분되어 있었기 때문에, 서로 다른 방향에서 오는 사람들이 서로 부딛히지는 않았다. 만일 인도에서의 질서조차도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면, 더욱 극심한 혼잡이 발생하였을 것이 분명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스크램블 교차로 인근에 이르자, 다시 곳곳에 들어선 경찰 버스와 순찰차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미야마스자카(宮益坂)방면으로 통하는 오오야마카이도(大山街道) 구간만 통제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스크램블 교차로에서의 차량은 평소와 큰 차이 없이 도겐자카(道玄坂)방면과 진구도오리(神宮通り) 간의 이동은 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하치코 광장 반대편, 시부야 센터 거리(渋谷センター街)로 향하는 입구에, '시부야는 할로윈 축제 장소가 아닙니다(渋谷はハロウィンの会場ではありません。)'이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먼발치서 보였고, 자연히 작년의 할로윈을 떠올리게 되었다. 언젠가부터 시부야, 특히 경찰들이 통제 중인 하치코 광장(ハチ公前広場)과 스크램블 교차로 일대는 할로윈의 성지가 되었다. 수많은 군중들이 몰리면서, 매해 경찰들의 통제가 이루어졌지만, 여기저기서 몰려드는 사람들의 이동을 완전히 통제하기는 힘들었고, 때때로 사고도 일어난 적도 있었다. 그 광란의 현장은 그 자체로도 위험하였기에, 해를 갈 수록 언론의 지속적인 보도와 함께, 경찰들 또한 더욱 촉각을 곤두세웠지만, 언제라도 인명사고가 터질 수 있었다. 특히 최근 입국장벽이 낮아지면서, 수많은 외국인들이 시부야를 찾게 되면서, 평소에도 시부야 일대는 수 많은 사람들이 몰렸기 때문에, 통제는 더욱 어려워지게 되었다.
더욱이 작년, 인접국인 한국에서 이태원 참사가 일어나게 되자, 그 위험성을 인지하였기 때문인지, 경찰 입장에서는 애초에 할로윈에 사람들이 몰려들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서, 이와 같은 메시지를 내걸어, 아예 근본적인 사고의 원인을 차단하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경찰에서도 직접적인 언급은 자제하고 있었지만, 이태원 참사를 어느 정도 염두에 두고 있음은, 그간의 일본 국내 보도를 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제아무리 안전을 중요시하는 일본일지라도, 수많은 사람들이 할로윈을 명분으로 일거에 몰리게 되면 공권력을 사용하더라도 힘에 부칠 것이며, 혹 인명사고가 발생하게 된다면 한국과 비슷하게 책임 소재를 두고 공방이 이루어질 것이니, 이번 시부야에서의 통제는 어떻게 보면 불가피한 조치였을 것이다.
할로윈에 대해서는 이태원 참사 이전에도 말이 많았다. 서양의 이벤트에서 그 일부만을 받아들여서, 분명한 이유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무질서하게 모이는 것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곱지 않게 보는 시선은 늘 있어왔다. 때문에 올해는 한국에서도 이태원의 경우는 작년처럼 사람들이 모이지 않게끔 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으며, 제2의 참사를 경계하는 국민적 정서로 인하여, 이태원은 이전만큼의 활기를 되찾기도 힘들어질 뿐더러, 사회적인 질타를 무릅쓰고 가장을 하고 이태원을 찾는 이들도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젊은이들이 혈기를 발산할 수 있는 할로윈 축제가 계속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참사 이후에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는다면 백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희생된 끔찍한 참사조차도, 천천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흐려져 갈 것이었다. 물론 일본의 경우는 이전에도 수 차례 압사사고를 겪은 바 있음에도, 직접적으로 한국과 같은 참사를 겪지는 않았기 때문에, 시부야가 아닌 다른 곳에서 할로윈 축제나 가장 행렬을 볼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공권력의 통제와는 별개로 중요한 것은 개개인의 안전에 대한 의식의 함양일 것이다. 동양문화권에서의 서양문화에 대한 전유가 어떤 형태로 이루어지건 간에,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건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일 것이다. 그러니, 보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개개인의 노력이 더해진다면, 할로윈에 대한 기성 세대들의 삐딱한 인식은 차치하더라도, 좀더 성숙한 문화가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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