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3. 13. 00:00ㆍ일본여행
이른 아침의 시나가와역은 더위보다도 소음이 주는 인상이 더 강했다. 단순히 사람들이 많아서는 아니었다. 승강장 인근에서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모양인지, 굴이라도 파는 듯한 중장비의 둔탁하면서 날카로운 소리. 그나마 역사로 내려갔다면 조금 덜했겠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굳이 여행을 앞두고, 출발지에서부터 힘을 빼고 싶지는 않았다.
얼마간을 기다렸을까. 굽이진 선로를 타고, 주변의 다른 차량들과는 다른 클래식한 분위기의 국철형 차량이 승강장으로 들어섰다. 삼각형 마크 아래 특급 마크가 적힌 이즈로 향하는 185계(185系). 으레 이즈로 향하는 길에 편안하고 빠른 이동을 보장할 수 있는 열차인 특급 오도리코(踊り子)이다.
분명 시나가와역을 출발할 무렵만 해도 구름이 다소 껴 있기는 하였지만 대체로 화창한 날씨였지만, 카나가와현을 지나가면서는 도중 급격히 하늘이 어두워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불안한 날씨와는 다르게, 차량 안은 무심할 정도로 평온했다. 종종 현지의 날씨를 확인하기는 하였지만, 오랜 여정이기도 하였고, 괜한 불안감은 무의미했다. 다행히도, 머지않아 하늘은 걷혔고 오다와라역을 지나 시즈오카현으로 들어설 무렵에는 목적지에 가까워진다는 실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열차는 미시마역 (三島駅)에서 JR토카이(JR東海)의 토카이도선을 떠나, 이즈하코네철도(伊豆箱根鉄道)의 슨즈선(駿豆線)으로 진입하였고, 미시마 시내의 번화한 모습은 어느덧 논밭이 펼쳐진 한적한 전원의 풍경으로 바뀌었다. 단선상에 위치한 여러 작은 역들을 지나, 열차는 이즈나가오카역(伊豆長岡駅)에 이르러 속도를 줄였다. 미시마역(三島駅), 슈젠지역 (修善寺駅) 등과 더불어, 특급차량인 오도리코가 정차하는 몇 안되는 슨즈선의 역. 몇 안되는 승객들과 함께 비에 젖은 듯한 승강장에 발을 디뎠다. 방금 전까지 한 차례 비가 쏟아진 듯 했고, 하늘에도 다소 구름이 끼어 있었지만, 다시 비가 내릴 것 같지는 않았다. 잠시 식었던 대기는 물기를 잔뜩 머금고 데워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역사 안에 있으면 잠시나마 더위를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비가 갠 뒤의 습한 공기와 마주하기 싫었음에도, 쉴 시간 없이 곧장 역을 나선 이유는 일정을 감안해서 적당한 시간대에 식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즈나가오카역 인근에 식당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비록 어느 정도 선택지를 가질 수 있어도, 이즈나가오카온천(伊豆長岡温泉)까지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고민 끝에 선택한 곳은 역에서 도보로 채 10분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한 잇피키노 쿠지라(一匹の鯨)라는 라멘집이었고, 짧은 거리였음에도 상의를 가득 적신 땀을 식히면서 깔끔한 쇼유 스프와 함께 면을 빨아당겼다. 인근에서는 제법 이름이 난 곳이었기에, 기분 좋게 식사를 마쳤다.
식사 이후 다시 역으로 돌아가, 버스 시간을 확인하였다. 누마즈로 향하는 노선 버스의 운행 빈도는 시간당 한 두대 정도가 고작이었기에, 자칫 방심하고 버스를 놓치게 된다면, 수십 분 간 역에서 발이 묶일 판이었다. 다행히도 발차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아 있었고, 역사 내부의 편의점에서 기념품을 둘러보면서, 발차 시간이 되기를 기다리다, 다시 역사 바깥으로 나섰다. 따갑게 내리쬐는 햇빛을 맞고 있으면 얼마 가지 않아 땀이 흘렀지만, 러브 라이브! 선샤인!!의 팬으로서 역사 안 뿐만 아니라 바깥의 전경 또한 둘러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마침 역 광장에는 이즈하코네버스(伊豆箱根バス)의 랩핑 버스가 보였다. 한동안 그저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버스는 버스가 도착할 시간이 가까워지자, 구동음을 내며, 광장을 크게 돌아 승강장 앞에 멈추어 섰고, 누마즈 여행의 시작을 함께 할 버스가 평범한 버스가 아니라는 것이 제법 운이 좋다고 여겨졌다. 노선의 종점이 곧 버스의 디자인과도 깊은 연관이 있었으니까.
한적한 역 주변의 풍경과는 다르게, 버스 안은 금새 승객들로 만석이 되었고, 역을 출발한 버스는 이즈반도 가운데 위치한 이즈나가오카온천(伊豆長岡温泉)을 굽이굽이 둘러, 이내 시즈오카현도 130호 이즈나가오카미토선(静岡県道130号伊豆長岡三津線)으로 진입했다. 그 사이 승객들은 절반 가까이가 빠졌고, 주변의 풍경은 카노가와(狩野川) 서안의 평지에서 한적한 산길로 바뀌었다.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 머물렀던 이즈노쿠니시(伊豆の国市)를 떠나, 여행의 목적지인 누마즈시(沼津市)에 접어들었다.
마치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관문과 같은 우치우라미토(内浦三津)에 접어들자, 얼마 지나지 않아 오쿠스루가(奥駿河) 남쪽에 자리잡은 우치우라 만(内浦湾)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작은 어선들은 출항할 때를 기다리며 정박해 있었고, 어촌의 한적한 풍경과는 대조적으로 분주히 차량들이 오가는 시즈오카현도 17호 누마즈토이선(静岡県道17号沼津土肥線)를 따라, 버스는 남쪽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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