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6. 22. 07:00ㆍ일본여행
홋카이도 여행의 시작은 호기로웠다. 분명 그래야만 하였을 것이다. 이미 그 전부터 계속되던 폭설의 여파를 뉴스로 접해왔음에도, 떠나고자 하는 의지를 꺾지는 않았으니까. 그러나, 출발부터 만만하지 않은 여정에, 일정은 순조롭기는 커녕, 홋카이도에 발을 내딛기도 전부터 꼬여만 갔다. 곡절 끝에 난관을 넘으면 또 다른 난관이 앞을 막고 있었고, 신치토세 공항에서도 예외는 없었다. 얼어붙은 밤공기에 몸을 움츠리며, 자칫하면 해가 뜰 때까지 삿포로에 도달하지 못할 뻔 하였던 상황이었으나, 다행히 좋은 인연을 만나, 비교적 수월하게 공항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또 다른 고생의 시작이리라는 생각을, 늦은 잠을 청하면서도 끝내 지우지는 못하였다.
그리고 삿포로에서 노보리베츠로 가기로 한 날,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여전히 폭설의 여파로 노보리베츠로 향하는 열차는 운행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우여곡절 끝에 버스를 타고 노보리베츠에 도착을 하였다. 흐린 하늘 아래, 서둘러 료칸으로 향하여 체크인을 마치고 나서야 오는 내내 긴장했던 마음이 풀어지는 듯 하였고, 지고쿠다니까지 둘러보고 오니 해는 저물어 온천가에는 어둠이 깔리고 있었고, 서둘러 료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고쿠다니를 여유 있게 둘러보기는 했지만, 저녁 식사까지 여유가 많지는 않아서, 료칸으로 가자마자 곧장 대욕탕에 들러 짧게 입욕을 마쳤고, 다시 쉴 틈도 없이 식당으로 향해야 했다. 다소 서두른 감이 없지는 않았으나, 이왕이면 개운한 상태에서 식사를 받아야 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식사를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침은 다시 잠잠하던 하늘이 눈을 뿌리고 있었다. 이미 눈이 수북히 내려앉은 나무가지 위로 다시 눈송이가 내려앉고 있었다. 밤에도 칠흑에 빛나며 날리던 눈발이, 날이 밝도록 그치지 않은 탓이다. 조용히 아침 식사를 하면서, 바깥 풍경에 잠시 마음을 누그려뜨렸으나, 평화는 오래 갈 수 없었다. 모든 여행에는 시작과 끝이 있지만, 시작이 순탄치 않았듯, 그치지 않는 눈은 그 끝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음을 조용히 알려주고 있었다.
조금 일찍 체크아웃을 하고 근처 버스 정류장까지 나갔다. 타키모토칸에서 다소 떨어진 곳, 센겐공원(泉源公園) 옆에 위치한 다이이치타케모토칸 앞(第一滝本前) 정류장에는 눈이 가득 쌓여 있었고, 하염없이 버스가 오기를 기다렸으나, 기상약화로 버스 다이어까지 뒤틀려버렸는지 예정된 시간이 지나도 버스가 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택시를 부르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온천가 입구에 위치한 도난 버스(道南バス)의 터미널까지 내려와서 온천가를 나갈 궁리를 했다. 이 날은 본래 하코다테(函館)까지 이동할 예정이었으나, 전날 밤부터 내린 눈으로 인해 다시 열차는 줄줄이 운행을 멈추었고, 노보리베츠 역을 경유하여 무로란으로 향하는 버스 노선이 있기는 하였으나, 무로란까지 간 들 다른 수는 없었다.
어쨌건 온천가를 벗어나야 함은 분명했기에, 무로란행 버스를 타고, 노보리베츠역앞에서 하차하여, 다른 방법을 모색할 방법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상황은 좋지 않았다. 역무원에게 물어본 바로는 무로란 본선을 운행하는 특급은 줄줄이 묶여 버렸고, 인근의 토야역(洞爺駅)까지의 구간만 제설이 된 상태였기에, 하코다테행은 당연히 기대할 수 없었다.
한동안 역사에서 어떻게 할 지를 고민해야 하였지만 선택지가 많지는 않았다. 삿포로까지의 구간도 치토세선(千歳線)의 미나미치토세(南千歳)에서 토마코마이(苫小牧)에 이르는 구간은 여전히 막혀 있었기에 열차로의 이동은 단념하고, 다시 역을 나와 전날 버스를 탔던 곳으로 다시 되돌아갔다.
국도가 교차하는 사거리에 이르니, 때마침 정류장에 버스가 정차하여 승객들이 탑승 중에 있었고, 뒤를 돌아볼 새도 없이 진탕이 된 눈에 신발이 젖는 줄도 모르고 뛰어가 가까스로 승차를 했다. 삿포로로 돌아간다면 어쨌건 모가 되건 도가 되건 수가 날 것이라는 생각에서 내린 결정이었지만, 본의 아니게 삿포로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으니 마음이 편안하지만은 않았다. 그나마 노보리베츠에서 벗어나게 된 안도감에, 잡담소리조차도 들리지 않는 조용한 버스 안에서 다시 잠을 청할 수 있었다.
버스는 오오야치(大谷地)에 이르러 운행을 멈추었다. 여전히 삿포로 시내의 도로교통은 절망적이었고, 버스 터미널이 바로 목전에 있었음에도 진입하는 데 한참이 걸려야 했다. 그 때문이었을까. 본래대로라면 삿포로역까지 운행해야 할 버스는 오오야치 버스 터미널에서 모든 승객들을 내렸다. 앞줄에 있었기에 일찍 내려 트렁크 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리고 있더니, 버스는 승객들을 남겨두고 다시 이동을 했다. 뒤를 돌아보니 뒤이어 들어오던 버스가 하차장에 진입을 못하고 있었다. 교통정체로 차량이 제 때 들어오지 못하고 빠져나가지 못하니 그리 된 것 같았다.
다시 마주하게 된 매표소에서, 하코다테로 가는 버스편을 알아보았지만, 멈추어버린 열차 탓에 버스는 막차까지 전부 매진이었다. 오오야치에서의 하코다테 진입이 사실상 무산되어 버렸기에, 삿포로역의 버스 터미널에 모든 기대를 걸고 다시 지하철을 탔다.
가는 길도 순탄치 않았지만, 돌아오는 길도 쉽지 않았던 노보리베츠 일정은, 하코다테행이라는 과제를 남겨 두고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그 뒤의 이야기를 말하자면 이렇다. 삿포로역 버스터미널에 가도 상황은 비슷했다. 매표소에 문의를 해 보니 다른 버스편을 소개해 주었는데, 야간 버스였다. 노보리베츠에서만 해도, 어느 정도의 고생을 감수하더라도 하코다테까지는 갈 생각이었지만, 날아서 가지 않는 한은 일정이 꼬여도 한참을 꼬여버린 상황에서 예정된 관광은 기대할 수가 없었기에, 하코다테 여행을 단념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일정을 변경, 다시 삿포로에 숙소를 잡았다. 대신 의도치 않게 비어버린 시간을 삿포로에서 보내기로 하고, 다음 일정을 구상하였다. 구체적인 대안은 없었지만, 답은 금방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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