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0. 3. 07:00ㆍ일본여행
태풍이 점점 시즈오카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던 날의 아침, 누마즈역 주변은 잠시 비를 뿌리다가, 이내 그치기를 반복했지만, 역 근처에 우산을 쓰고 다니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태풍이 본격적으로 상륙하게 되면, 바깥을 돌아다니기도 쉽지 않을 것이 분명해서, 조금 일찍 우치우라에 다녀올 생각으로 버스에 올랐다. 태풍은 물론이고, 비소식은 당연히 확정이었는데, 우치우라에 향하는 여정이 다소 무모한 도전처럼 여겨지기도 하였으나, 맑은 날에도 흐린 날에도 여러 번 우치우라를 방문한 경험이 주저하지 않게 발걸음을 옮기게 했다.
물론 비가 완전히 그치지는 않아서, 버스가 출발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세찬 비가 쏟아졌고, 버스의 와이퍼는 쉴 새 없이 돌아갔다. 그나마 우치우라가 가까워지면서는 잠시 소강세에 들어갔는데, 그래도 마음을 놓고 다닐 정도는 절대로 아니었다. 하늘이 비구름에 덮여 있는 동안은 언제고 다시 강한 비가 쏟아진다고 하여도 이상하지 않았을 터였고, 더욱이 태풍이 스루가만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평온한 날씨는 기대할 수 없었다.
나가하마(内浦長浜)에 내린 것은 그런 점에서는 적절한 선택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물론 목적은 이 날의 날씨와는 별개의 문제였다. 하지만, 우치우라에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도 비를 피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곳이었기에, 잠시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다.
안내소 앞에 늘어선 여러 가지의 스탬프. 그리고 못보던 스탬프가 하나 더 늘었다. 소독액 앞에 덩그러니 놓여진 그것 다른 스탬프들 찍지 말라는 법은 없겠지만, 이번에는 다른 스탬프 랠리를 위해 특별히 이곳까지 왔기 때문에, 우선 입장 전에 스탬프를 먼저 찍어두었다.
날씨가 좋지 않았지만, 안내소를 찾는 인원은 적지 않았다. 대부분 비를 피할 겸 해서 가벼운 잡담 속에 운을 띄우는 듯이 보였으나, 이 날의 날씨에 대한 우려는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카페처럼 길게 이야기를 풀어 낼 만큼 편한 곳도 아니었고, 정숙이 기본인 공간에서 대화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사실 그들도 궂은 날씨를 어느 정도는 감안하고 이곳까지 온 것은 아닐까. 분명히 여정에 대한 감상은 천차만별이겠지만, 분명한 목적도 없이 스쳐지나듯 들렀다고 하여도, 맑은 날에 비하면 이런 날에 우치우라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제한되게 마련이다. 이는 바닷가 지역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었지만, 외부인에게 있어서는, 여행지의 특징이기도 했다.
안내소를 방문한 날은 치카(高海千歌)의 생일이 얼마나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사실은 제법 지났긴 한데, 다음 타자인 리코(桜内梨子)의 생일이 가깝다고도 할 수 없었다. 덕분에 치카의 굿즈는 부족함이 없을 만큼 볼 수 있었다. 피규어도, 네소베리 인형도. 안내소에서 몇 번째의 생일을 준비해 왔는지를 생각해보면, 이 정도의 굿즈를 마련한 것도 정성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비가 오는 날이어서 한켠에는 테루테루보즈도 걸려 있었다. 안내소를 가득 메운 굿즈 가운데서 항상 제 자리를 지키고 있지는 않지만, 언젠가 이 곳에서 본 듯도 하였기에, 낯설지는 않았다. 언제쯤, 혹은 기적처럼 비가 그칠 것인가.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이 날은 비구름이 온전히 걷히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였다. 그럼에도, 목적은 다르지만,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비가 그치기를, 그리고 다시 우치우라에 맑은 하늘을 드리우기를 바랐을 것이다, 테루테루보즈를 바라보면서.
안내소 안을 한 바퀴 둘러 보고, 바깥에서 숨을 고르고 있자니, 스탬프대 앞에 있는 하나타로(花太郎)의 보금자리로 시선이 이동했다. 안내소 안에 있을 때는 한 손에 들 수 있을 만큼 작은 토끼장 안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밖으로 옮기면서 더 큰 공간을 갖게 된 것이다. 다만 바깥에 나와 있는 시간이 길지 않아, 좀처럼 집 밖으로 나와 있는 모습을 볼 수는 없었는데, 토끼장에 걸린 성격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안내소에 오기 전 어디에 있었는가를 생각한다면 사람의 시선에 마냥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은 아닐 것이었다. 오히려 집 안에서는 평온하게 털을 고르고 있는 모습에 불안한 기색은 없어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날씨 때문인지 다소 기운이 없어 보였다. 태풍이 지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은, 사람이건 동물이건 비슷할 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주변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차 몇 대만이 주차되어 있을 뿐인 젖은 주차장에도 활기는 없어 보였다. 키친카가 있어도 이러하였을까. 북상하는 태풍 때문에 이 날은 영업을 하지 않았지만, 설령 영업을 하여도 사람들은 좀처럼 모여들 것 같지 않았다.
바깥은 빗소리, 그리고 안은 익숙한 아쿠아의 노래가 서로 얽히는 그 경계선에서, 결정을 내려야 했다. 오랫동안 머물 수도 없고, 좀처럼 떠날 수도 없는 곳이었다. 비는 그칠 줄을 몰랐고, 이동을 위해서는 우산을 접을 수가 없었지만 다행히도 버스에서 내렸을 때 보다는 그 정도가 약해져 있었다. 다시 이 곳을 찾았을 때의 하늘은 무슨 색이며, 안의 굿즈들은 또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보기로 했다. 차만이 부지런히 오고 가는 해안도로 너머로 멀리 시게데라(重寺)의 해안과 아와시마(淡島)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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