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3. 12. 20:00ㆍ일본여행
삿포로에서 노보리베츠로 가기로 한 날, 하늘은 폭설 때문에 공항에 발이 묶여 있어야 했던 전날의 폭설이 무색하게 다시 눈을 뿌렸으나 해가 뜨면서 이내 맑은 하늘을 드러내었다. 종일토록 멈추어 있던 열차도 운행을 재개한 듯이 보여서 삿포로역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다소 가벼웠다. 첫날은 액땜으로 치고 그 이후의 일정은 전부 순조롭게 풀릴 것 같았고, 그리 되기를 바랬다.
그러나 여전히 열차편은 폭설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상당수의 열차들이 운행을 보류하고 있었다. 기껏해야 삿포로를 중심으로 한 하코다테 본선과 삿쇼선 그리고 치토세선의 일부 구간 정도였고, 노보리베츠로 향하는 열차도 상당수가 운행 중지 상태였다.
그럼에도 우선은 오후부터라도 일부 열차가 운행 예정에 있음에 안도하며, 미리 좌석이 매진되기 전에 가장 빠른 열차편을 예매하였다. 앞으로의 상황이 또 어떻게 변할 지는 알 수 없었지만, 우선은 식사를 하고 추후 상황을 지켜보기로 하였다. 새벽 늦게 삿포로에 도착한 이후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한 차에, 영업 중인 매장은 정해져 있었고, 그날따라 규동이 몹시도 먹고 싶어, 가장 가까운 규동집을 찾아서 든든하게 배를 체웠다.
그리고 모처럼의 여유를 즐기다가, 열차 시간이 가까워져서 다시 역으로 향했고, 삿포로를 떠나기 전에 미리 기념품 매장에도 들렀다. 그 때까지는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개찰 앞에서, 예약한 열차의 운행 중지 소식을 들어야 했고, 계획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이후의 운행 여부도 알 수 없어서, 열차에만 기대다가는 해가 지기 전에 노보리베츠로 가지 못할 판이었다. 결국 티켓을 환불하고, 버스를 알아보러 인근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삿포로역을 출발하는 버스는 찾을 수 없었으나, 다행히도 오오야치 버스 터미널(大谷地バスターミナル)에서는 노보리베츠로 가는 버스가 운행 중에 있다는 매표소 직원의 말을 듣고 재빨리 지하철로 향했다. 버스 시간도 문제였으나, 버스 터미널이 있는 오오야치는 삿포로역이 아닌 신삿포로역(新札幌駅)에 더 가까이 위치해 있었기에 걸음을 서둘러야 하였다. 난보쿠선(南北線) 혹은 토호선(東豊線)으로 오오도오리역(大通駅)에서 토자이선으로 환승하여, 신삿포로방면으로 이동하는 루트였고, 서두르기에 따라서는 조금이라도 빨리 버스를 탈 수 있었기에, 이 시간만큼은 있는 여유조차도 전부 잊은 채, 오로지 버스만을 생각하였다.
그리고 곡절 끝에 닿은 오오야치 버스터미널의 상황도 그다지 좋아 보이지는 않았으나, 대부분의 노선들이 정상적으로 운행 중에 있었다. 홋카이도 각지로 뻗어나가는 버스노선 가운데, 노보리베츠로 가기 위해서는 무로란으로 향하는 홋카이도 츄오 버스(北海道中央バス) 및 도난 버스(道南バス)의 노선을 타야 했다. 서둘러 홋카이도 츄오 버스의 매표소에서 발권을 하려고 했더니 창구가 아니라 옆에 위치한 자동 발권기를 이용해야 한다고 하였다. 때마침 승차가 진행 중에 있었던, 매우 긴박한 상황에서, 마지막까지도 긴장을 늦추지를 못하고, 발권을 하자마자 바로 버스에 승차했다. 거의 마지막으로 탑승을 하였기에, 빈자리도 많지 않아 출발 직후에 가까스로 자리를 잡았다.
버스는 출발을 하였지만, 도로의 상황은 좋지 않아, 버스 터미널을 빠져나가자마자 시작된 정체에, 버스는 한동안 제 속도를 내지 못하였다. 방송에서는 기본적인 준수사항과 더불어, 눈 때문에 마비된 삿포로의 도로 상황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보리베츠로 향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었다.
버스는 고속도로에 진입해서야 제 속도를 내기 시작했고, 바깥과는 다른 온기에 몸을 맡기며,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 자연히 졸음이 오기도 하였으나, 수면 부족으로 인하여, 짧은 시간이라도 잠을 자 두어야 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버스는 히가시노보리베츠 IC를 통과, 노보리베츠로 들어섰고, 미리 하차 준비를 했다. 노보리베츠에서 승객들을 내리고, 버스는 다시 무로란으로 가야 했다.
어느 한적한 국도변에 정차한 버스에서는 제법 많은 승객들이 내렸지만, 여전히 차내에는 절반을 넘는 승객들이 남아 있었다. 버스 기사는 요금 정산을 마치자마자 트렁크를 열어 짐을 일일이 꺼내주었고, 다시, 국도를 따라 서쪽으로 버스는 무심하게 지나갔다.
노보리베츠를 경유하는 버스라고 하면 노보리베츠역(登別駅)에 정차할 법도 하지만, 내린 곳은 무로란(室蘭)에서 이어지는 국도235호의 정류장이었다. 노보리베츠에 도착한 이상은 온천가까지 이동을 해야 했으나, 온천가로 가는 버스는 이 정류장을 경유하지 않는다.
정류장 팻말에도 적혀 있는 대로, 노보리베츠온천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국도를 벗어나, 노보리베츠역을 기점으로, 국도와 교차하는 일반도로인 홋카이도도 286호 노보리베츠정차장선(北海道道286号登別停車場線)변에 위치한 별도의 정류장을 이용해야 하였기에, 눈으로 덮인 인도를 따라, 무거운 짐을 이끌고 가야 했다.
노보리베츠 정류장을 기준으로 가장 가까운 정류장은 노보리베츠역 가까이 위치한 마린파크도오리(マリンパーク通り)정류장이다. 노보리베츠온천으로 가는 버스는 노보리베츠 역에서 발차하나, 구태여 역까지 갈 필요는 없었다. 오가는 차량은 뜸했지만, 한 두시간을 기다려야 할 정도는 아니었기에, 우선은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기로 하였다.
그러나 그마저도 추운 날씨에, 오래 기다릴 수가 없어, 결국 버스 대신 택시를 잡았다. 노보리베츠에서 내린 승객들은 전부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차에, 먼저 선수를 친 것이었다. 목적지인 다이이치타키모토칸까지는 이천삼백엔 정도가 나왔다. 일본의 택시 요금이 비싸다고는 하지만, 이 날 만큼은, 굳이 내색하고 싶지 않았다.
온천가에 진입한 택시는 오르막길을 올라 목적지까지 향해 갔다. 온천가는 도로조차도 제설이 불안정한 상황이었고, 어중간한 곳에 내린 들 돈은 돈대로 내고 괜한 고생을 하기 쉽다. 더욱이 짐도 있었기에, 가급적이면 구체적으로 목적지를 말하는 편이 좋다.
택시는 다이이치타케모토칸 정문 앞에서 멈추었고, 미리 대기중인 직원들이 트렁크에 있던 짐을 꺼내 주어, 로비까지 불편함 없이 들어가, 체크인을 마쳤다.
다소 애매한 시간이기는 하였지만, 식사시간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었고, 잠시 온천가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센겐공원(泉源公園)에서는 짙은 유황 냄새와 함께, 뿌연 증기가 수시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눈에 파묻힌 센겐공원을 뒤로 하고 향한 곳은 지고쿠다니였다. 다이이치타케모토칸이 지고쿠다니에서 가까이 위치해 있어, 얼마 걷지 않아 금방 도착하였는데, 입구부터 유황냄새가 느껴졌다.
일본의 수많은 온천 가운데서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노보리베츠온천. 19세기 후반부터 개발이 진행되어 인프라가 조성된 이래, 지금은 여러 대형 호텔들이 자리잡은 온천가가 되었다. 그리고 지고쿠다니는 그 온천의 근원이 되는 원천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시간이 갈수록 거세지는 눈발을 이기며, 눈이 두껍게 쌓여 방심하다가는 미끄러지기 십상인 산책로를 따라 걷는 길이 마냥 순탄하지는 않았으나, 두껍게 쌓인 눈과 온천수가 빚어내는 풍경은 그 자체로 장관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지고쿠다니를 한 바퀴 둘러보고 나니 타이밍 좋게 해가 저물고, 온천가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다시 료칸으로 돌아가면, 여러 종류의 온천수를 모아 놓은 대욕탕에서 즐기는 온천욕을 즐기고 홋카이도의 진미를 모아놓은 카이세키를 맛볼 것이었다. 오는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지만, 그 짧은 시간동안의 행복을 즐길 수 있다면, 충분히 올 가치가 있지 않겠느냐고, 돌아가는 길에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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