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5. 21. 07:00ㆍ일본주류
얼마 전 지인이 야마구치현에서 술을 가지고 돌아왔다. 야마구치에도 나름의 명주들이 많지만, 전국적으로 보았을 때 술로 알려진 동네는 아니다. 그나마도 전국구로 통하는 명주인 닷사이가 있긴 하지만, 그 이외의 명주를 타 지방에서 접하기란 쉽지는 않다.
지인이 준비한 술은 총 세 병. 공교롭게도 전부 준마이긴조이다. 가장 잘 알려진 주종이기는 하나, 워낙에 맛의 스펙트럼이 다양해서 그 매력 또한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이 개성넘치는 세 술의 맛을 비교하는 일명 노미쿠라베(飲み比べ)를 해 보았다.
첫번째로 소개할 술은 타비사케이다. 타비사케라는 브랜드가 야마구치 현만을 대표하지는 않는다. 동명의 주식회사에서 전국 각지의 주조사와 연계하여 제조된 술에 번호를 붙인 것. 컨셉에 맞게 온라인에서 클릭 몇 번으로 쉽게 구할 수 있는 술이 아니라, 당 지역을 찾는, 혹은 주조사까지 발품을 파는 여행자들을 위한 오프라인 한정판매주이기 때문에, 이 술이야말로 한정성이 제일 큰, 술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총 52번까지 번호가 붙여진 타비사케 시리즈 가운데 22번이 붙여진 이 술은 야마구치 현 하기 시의 이와사키 주조(岩崎酒造)에서 제조한 준마이긴조(純米吟醸)이며, 야마구치 현에서 독자적으로 생산되는 사카마이인 사이토노시즈쿠(西都の雫)를 사용하여, 역시 지역성이 배가된다. 맛을 보기전 진하고 감미로운 향이 코를 자극하는데, 입 안에서는 산미가 먼저 진하게 퍼진다. 알코올의 쓴 맛은 자제되어 있는 반면, 어느 정도 단맛도 잡혀 있고, 목넘김이 매우 부드러워,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점이 전반적인 특징이다. 정미보합은 40퍼센트이며, 도수는 16도에서 17도 사이로 다소 높은 편.
두번째는 미가키 식스(みがき6). 하기시에 위치한 나카무라 주조(中村酒造)에서 제조하였으나, 미가키 식스는 나카무라 주조 고유의 술은 아니다. 이 술은 엄밀하게는 6개의 주조회사와 14개의 영농법인이 뜻을 모아 만든 하기 사카마이 미가키 협동조합(萩酒米みがき協同組合)의 기획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술이다. 하기시(萩市)와, 동쪽의 아부쵸(阿武町)에서 생산된 야마다니시키(山田錦)를 사용, 원료의 재배부터 양조에 이르는 생산과정이 모두 하기아부(萩阿武) 지역에서 이루어지도록 하여, 일대에서 재배되는 야마다니시키의 생산량 증대와 더불어 지자케의 상품성을 강화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 술이다.
이 일환으로 만들어진 미가키 식스는 특이하게도 매 해마다 6개 주조사가 돌아가면서 제조를 하는데, 세번째 발매가 되는 2021년에는 이 나카무라 주조에서 생산을 하였다. 주조사와 마찬가지로 하기시에 위치한 영농법인에서 생산된 쌀을 원료로 하였으며, 당연히 100퍼센트 야마다니시키가 사용되었다. 정미보합은 50도이며, 2000병만 한정생산된 귀한 술이다.
향은 그렇게 강하지 않다. 하지만, 입에 닿는 순간부터 강한 알코올 향이 입 안을 체운다. 산미나 단 맛은 상당히 절제되어 있고, 짐짓 드라이한 느낌도 강하다. 다만, 다른 잡미가 혀를 혼란스럽게 하지는 않는다. 분명 젊은 감각과는 거리가 있는 맛이라 다소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그와는 다른 스타일의 가라앉은 일본주의 맛을 원한다면 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건 야마다니시키를 사용했기 때문에, 사카마이의 특징이 제대로 우러나오는가 하면,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보았을 때는 충실하였다고 판단하였다.
마지막으로 맛본 술이 바로 시모노세키 스피릿 오브 445(下関SPIRIT OF 445), 시모노세키시에 위치한 시모노세키 주조(下関酒造)에서 만든 술으로, 정미보합은 50도. 445라는 이름은 시모노세키 주조의 창립자 445명과 연관이 있으며, 원재료를 전부 시모노세키산으로 한, 역시 지역의 개성이 잘 묻어난 술이며, 지역이 지역이다 보니 시모노세키 브랜드 메이지 유신 150주년기념 인정품이기도 하다. 역시 들인 공이 있어서일까, 가격은 세 술 가운데서는 가장 비싸다.
세 술 가운데는 그래도 밸런싱이 제일 잘 된 술이다. 알코올 향이 강하지 않고 그윽한 향이 특징적이며, 목넘김 이후에는 약간의 단 향이 은은하게 여운을 준다. 그리고 부드럽게 감겨서, 부담감 없이 즐길 수 있는 매우 깔끔한 맛을 이루고 있다.
술만 마시기에는 허전하니 따로 안주를 만들었다. 일본주에는 생선회를 같이 곁들이는 경우가 잦지만, 역시 질 좋은 술이 세 병인데, 질 좋은 횟감을 구하려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격일 터. 마침 날씨도 점점 더워지고 있어, 몸보신을 할 겸 닭을 삶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여러 모로 개성있는 술과 좋은 안주가 모이니, 좋은 술자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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