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0. 20. 00:00ㆍ일본여행
가을을 맞아 우츠노미야로 떠나기 위해, JR동일본 신주쿠역에 도착했다. 시간대를 불문하고 수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콩코스에는 쌀쌀한 가을의 공기가 감도는 듯 하였고, 쇼난신주쿠라인(湘南新宿ライン)의 승강장 위에 서니 정체를 모를 감정이, 마음 깊숙한 곳에서 피어나는 듯 하였다. 때마침 코가네이(小金井駅)까지 가는 쇼난신주쿠라인 열차가 발차를 기다리고 있었고, 우츠노미야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기에, 그린샤(グリーン) 티켓을 끊었고, 모처럼 우츠노미야로 떠나는 길에, 조금 높은 곳에서 바깥의 풍경을 바라보고 싶어서 2층칸에 자리를 잡았다.
한참을 달려 열차는 코가네이역에 도착했고, 열차가 멈추자마자 계단을 내려갔다. 나선형 계단을 내려 갈 때면 으레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느낌이 들고는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으니 바로 이 경우를 두고 말함이었다. 토카이도선(東海道線)을 탈 때도 비슷한 경험이 있지만, 토호쿠본선 또한 열차의 계통상의 문제로 이러한 경우를 종종 경험하게 된다. 우츠노미야역은 물론 우츠노미야시와도 떨어져 있는 시모츠케시의 남쪽에서, 열차가 떠난 뒤 정적이 감도는 승강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가만히 후속열차를 기다리는 것 뿐이었다.
도쿄역(東京駅)에서 이와테현(岩手県) 모리오카시(盛岡市)의 모리오카역(盛岡駅) 까지 이르는 긴 토호쿠본선의 구간 중, 도쿄역에서 토치기현(栃木県)의 나스시오바라시(那須塩原市)에 위치한 쿠로이소역(黒磯駅)까지의 구간은 통칭 우츠노미야선(宇都宮線)으로 부르는데, 이 구간을 운행하는 열차의 경우는 우츠노미야역(宇都宮駅)을 기종점으로 하는 열차도 많지만 종종 우츠노미야보다 더 북쪽에 위치한 나스시오바라시의 쿠로이시역과, 남쪽에 위치한 시모츠케시(下野市)의 코가네이역(小金井駅)을 종착역으로 하는 열차도 다니고 있는데, 쿠로이시까지 가는 열차는 논스톱으로 우츠노미야까지 갈 수 있지만 코가네이까지 가는 경우는 어쩔수 없이 일단 하차하여, 우츠노미야로 가는 열차를 기다려야 한다.
그나마 우츠노미야까지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기 때문에, 잠시동안만 열차에 몸을 맡기면 얼마 가지 않아 우츠노미야역에 도착함을 알리는 차내 방송이 흘러나왔고, 청명한 하늘 아래, 토치기현의 중심지답게 빼곡히 건물이 들어선 우츠노미야시의 시가지를 보면서, 세월이 지나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익숙한 풍경에 내심 안도하였다.
우츠노미야역을 나와서부터는 주택가를 따라 난 작은 산책로를 따라 서쪽으로 나아갔다. 시의 중심지를 끼고 있는 역 동쪽의 번화한 풍경과는 다르게, 서쪽은 오가는 사람들도 많지 않고 조용하였다. 역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을 했다면 물론 시간도 절약할 수 있고 보다 편한 여정을 즐길 수도 있었겠지만, 그 보다는 관광객이라면 좀처럼 갈 일이 없는, 지역 주민들이나 종종 이용할 법한 좁은 길을 다니면서, 적당히 내려앉은 낙엽들을 해치고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오히려 계절의 한 가운데 들어와 있음을 더욱 실감케 하는 듯 하였다.
산책로가 끊기는 지점에 이르러 큰 길이 다시 보였다. 국도4호(国道4号)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 다시 국도123호(国道123号)를 따라 서쪽으로 이동하면, 낮설지 않은 대학의 간판이 보였다. 토치기 현을 대표하는 국립대학인 우츠노미야 대학(宇都宮大学)의 미네(峰) 캠퍼스였다. 우츠노미야시의 동쪽에 비하여 별다른 볼거리가 없는 서쪽에서, 그나마 한 번쯤은 지나칠 법한 곳이 아니었을까. 외부에서 바라보는 캠퍼스의 풍경도 분명 눈길을 끌기에는 충분할 터였기에, 캠퍼스 내부로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막상 정문앞에서 바라본 풍경은 매우 희귀하다고 할 수 있었다. 오가는 학생들도 없이, 정적에 사로잡힌 듯한 캠퍼스. 사람들의 이동조차도 자유롭지 않던 시기에, 캠퍼스의 활기는 찾아볼 수 없어, 내심 쓸쓸한 기분이 떠나지를 않았다.
미네 캠퍼스를 기준으로 요토(陽東)방향으로 올라갔다. 동쪽에 자리한 우츠노미야 대학의 요토 캠퍼스 또한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언제쯤 여느때와 같은 활기를 찾을 수 있을까. 계절이 주는 서정에 더하여, 길고 긴 침묵의 시기가 주는 적막감은, 청명한 하늘조차도 가리지 못하는 듯 느껴졌다.
요토에 이르게 되면 우츠노미야 서쪽의 대표적인 상업 시설인 벨몰(ベルモール)을 거쳐가게 된다. 요토 사쿠라도오리(陽東桜通り)를 디나 벨몰의 옆을 지나면, 넓은 길의 한 가운데, 우츠노미야의 노면전차선인 우츠노미야 라이트레일(宇都宮ライトレール)의 우츠노미야 하가 라이트레일선(宇都宮芳賀ライトレール線)의 공사가 한창이었다.
벨몰을 뒤로 하고, 우츠노미야 현도 64호 우츠노미야미야무카다선(栃木県道64号宇都宮向田線)을 따라 한동안을 서쪽으로 걸었다. 얼마 가지 않아 주택과 상가 건물은 띄게 줄어들고, 마치 키누가와(鬼怒川)에 가까워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도로 양쪽으로 논밭이 펼쳐졌다. 벼는 조금씩 영글어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도로 위에는 사람들은 물론 오가는 차량들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굳이 이 먼 길을 도보로 이동한 데는 가을을 맞아 우츠노미야를 찾은 이상 조금 느긋한 여행을 즐기고 싶어서이기도 하였지만, 서쪽으로는 좀처럼 버스 노선이 다니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도 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버스 노선에서도 떨어진 곳에 무슨 볼거리가 있는가 볼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이러한 도심과는 떨어진 곳까지 발품을 팔아야만 볼 수 있는 곳이 있으니, 바로 우츠노미야시의 일본주 양조장인 우츠노미야 주조(宇都宮酒造)다.
키누가와에서도 가깝고 주변에는 논밭과 함께 드문드문 주택이 위치한 그야말로 전형적인 농촌이라고 할 수 있는 곳에, 관광객이라 할 인원은 보이지 않았고, 주조 안에도 손님은 없었다. 덕분에, 직원분에게 우츠노미야 주조와 판매중인 술에 대해서 많은 설명을 들을 수 있었고, 가을에만 판매되는 귀한 술도 구입할 수 있었다.
우츠노미야 주조를 나와서는 이왕 키누가와 인근까지 온 만큼, 강가의 제방을 따라 걸어보기로 했다. 주변에는 사람들도 없었고, 사이클링 로드도 있었지만 오가는 자전거는 한 손으로도 셀 수 있을 만큼 적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키누가와로 향하는 길에 보았던 우츠노미야 라이트레일의 공사현장과 다시 한 번 조우하였다. 강변 위로 상당 부분 공사가 진척이 된 교각은, 미처 육상의 노반과는 이어져 있지 않았기에, 이 때만 해도 언제쯤 건설이 될 지, 큰 기대를 하고 있었다. 교각을 따라 키누가와를 건너면 선로는 강 동쪽의 키요하라 공업 단지(清原工業団地)를 지나 주택단지인 유이노모리(ゆいの杜)를 거쳐 하가마치(芳賀町)에 이르게 되는데, 우츠노미야의 시가지는 둘째치더라도, 서쪽의 교통 환경의 개선에는 큰 역할을 할 것임이 느껴졌다.
여정은 강을 따라 계속 이어졌고, 공사 현장을 지나고 얼마 가지 않아키누가와 동쪽을 잇는 키누바시(鬼怒橋)와 만나게 된다. 다시금 국도123호를 따라서, 우츠노미야역 방향으로 돌아갈 차례였다.
오랫동안 걷는 사이 오후도 점점 시간이 흘러 저녁을 향해 가고 있었고, 다시 미네마치(峰町)의 우츠노미야대학 미네 캠퍼스에 도착하였다. 이미 한 번 지나친 곳을 다시 들른 이유는 학교에 볼 일이 있어서보다, 학생처 건물의 1층, 우체국 옆에 위치한 미니스톱에 들르기 위해서였다.
아무래도 학교 건물을 끼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도 자주 찾는 미니스톱에는 우츠노미야 대학과 관련된 상품들도 팔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교명이 들어간 일본소주인 우다이로망(宇大浪漫)을 사기 위해서였다. 우연한 계기로 알게 되었지만, 의외로 맛이 괜찮아서 우츠노미야를 방문한 이상 한번쯤 학교를 들를 계획이었는데, 판매처가 한정되어 있는 우다이로망을 한 병만 사기에는 아까워서 전 종류를 구입하였다.
그렇게 하루의 여정을 학교에서 일단락짓고, 정문 옆에 자리한 버스 정류장에서 우츠노미야역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정시가 아닌 수 분 정도 지연이 되기는 했지만, 우츠노미야 여행 1일차의 주된 목적을 달성하였기에, 역까지 도착하는 시간이 다소 늦어져도 불만은 없었다.
버스는 역 동쪽에 내렸다. 일반적으로는 토호쿠본선의 선로 밑을 지나 역 서쪽의 정류장까지 가는 노선이 많지만 드물게 역 동쪽에 정차하는 버스에 승차한 탓이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후련함을 잠시 뒤로 하고, 역사 안으로 들어가기 전, 계단에 올라 꾸준히 버스가 오가는 하차장을 바라보았다. 해가 서서히 저물고 있었다.
우선 숙소에 체크인을 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에, 서쪽 출구로 나와서, 시 중심지까지 이동했다. 버스를 타도 되었지만, 동쪽을 여행할 때와 마찬가지로, 번화한 시가지의 모습을 눈에 담으면서 중심지까지 이동했다. 이 날의 숙소는 우츠노미야 토부 호텔 그란데(宇都宮東武ホテルグランデ)였다. 시내의 산재해 잇는 호텔 중 어느 호텔을 고를 지 고민을 많이 하였지만, 모처럼의 우츠노미야 여행에 다소 사치를 부리고 싶은 마음에 선택한 호텔이었다.
짐을 풀고서는, 근처 오리온도오리(オリオン通り)에 위치한 교자 전문점 키랏세 본점(来らっせ 本店)에서 구입한 교자와, 우츠노미야시의 크래프트 맥주인 교자로망(餃子浪漫)을 곁들여 간단하게 식사를 마친 뒤, 우츠노미야의 야경을 바라보면서 하루를 마쳤다. 가을 우츠노미야 여행의 첫날 밤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