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시(札幌市)의 대표적 랜드마크! 삿포로시 시계탑(札幌市時計台)

2023. 11. 2. 21:00일본여행

반응형

 

삿포로시(札幌市) 오오도리공원(大通公園)에서 조금 북쪽으로 떨어진, 키타 1조 도리(北1条通り)와 니시 3조 도리(西三条通り)가 교차하는 지점에 이르자, 청명한 종소리가 주변으로 울려 퍼졌다. 소리의 근원을 찾아 둘러보니, 홋카이도신문사 건물 등 높은 빌딩들과는 대조적으로, 2층 정도의 낮은 건물이 눈 앞에 보였다. 한 번에 보아도 근대 건축물의 정취를 물씬 풍기는 이 건물이 삿포로 시가지의 관광 명소로도 알려진 삿포로시 시계탑(札幌市時計台)이다. 하지만, 건물 앞의 표지석은 조금 이질적인 문구를 담고 있었다. 건물 앞 외로이 서 있는 정방형의 표지석에는 천황이 다녀갔음을 나타내는 교코(行幸)라는 글자 아래 메이지14년(1881년) 9월 1일 이라는 방문 일시가 적혀 있었고, 그 옆에는 구 삿포로농학교 연무장(舊札幌農学校演武場)이라는 명칭이 적혀 있었다. 기실 이 연유에 대해서는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이들에게는 분명 삿포로시 시계탑으로 알고 찾아왔건만 왜 다른 이름이 적혀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삿포로 시가지에는 삿포로의 근대사를 증언하는 옛 건축물들이 산재해 있는데, 대부분은 일본의 전근대사에서는 줄곧 에조치(蝦夷地), 즉 아이누의 땅이었던 홋카이도 개척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 삿포로시 시계탑 또한 건물의 지붕에는 개척사(開拓使)의 문장이던 붉은 별이 박혀 있어, 홋카이도의 오랜 역사에 있어 빼놓을 수가 없는 건물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었다.

 

 

삿포로시 시계탑은 건물 꼭대기에 걸린 시계 때문에 널리 알려져 있지만, 건물 자체는 본래 키타 1조 도리(北1条通り)와 키타 3조 도리(北3条通り) 사이에 자리하였던 삿포로농학교(札幌農学校)의 연무장(演武場), 즉 무도를 익히는 공간이자 교내의 각종 행사가 행해지던 곳이었다. 삿포로 농학교는 현 홋카이도대학(北海道大学)의 원류와도 같은 곳인데, 이후 1903년 삿포로농학교가 현재의 홋카이도대학 부지로 이전하게 되면서, 삿포로 농학교의 부지는 재개발되었고, 연무장 건물 또한 현 위치로 이전하게 되었는데, 본래 건물이 있던 자리인 키타 3조 거리에는 건물터를 알리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삿포로시 시계탑은 내부관람이 가능하기에, 조금 더 이 건물의 정체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고 싶은 마음에 입구로 들어섰다. 성인은 200엔이며, 관람 전 캐리어 가방을 둘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어, 티켓을 구입 후 캐리어 가방을 한 켠에 두고 정해진 관람 순서에 따라 좌측의 소전시실으로 이동했다.

 

 

건물 북쪽에 위치한 소전시실에는 삿포로시를 포함한 홋카이도 전역의 문화재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코너가 있었다. 특히 삿포로시 내의 문화재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홋카이도의 건축문화재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알 수 있기 때문에, 이 전시실에서 삿포로시 뿐만 아니라, 홋카이도 전역에 산재한 각종 문화재들에 대한 이해를 한 후 홋카이도 관광을 시작하여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리고 한 켠에는 옛날 학교에서 볼 법한 나무 걸상을 떠오르게 하는 책상 및 의자와 함께, 각종 자료들을 열람할 수 있는 코너도 있었다. 다른 곳에는 컴퓨터로도 사진 자료 등을 검색 가능할 수 있었는데, 상세히 둘러볼 시간은 없었기에 아쉬움이 남았다. 한편, 삿포로농학교 자체가 홋카이도대학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 하기에, 학교 부지에서는 다소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홋카이도대학 관련 자료와 함께, 소전시실 옆에 붙어 있는 매점에서는 홋카이도대학의 굿즈 또한 구입할 수 있다.

 

 

소전시실을 나와, 대전시실에 들어서니, 정면에 삿포로농학교의 디오라마가 전시되어 있었다. 연무장 외에도 기숙사를 포함, 서고(書庫)와 화학강당(化学講堂), 기상대(気象台)까지 갖춘 당시의 삿포로농학교의 모습은 개척사가 설치된 이후, 한창 시가지를 형성해 나가던 19세기 후반의 삿포로의 풍경을 연상케 했다. 지금은 고층 빌딩이 빈 땅을 찾기 힘들 만큼 밀집해 있고, 구 연무장 건물 또한 삿포로시 시계탑이라는 이름으로, 교차로의 한 귀퉁이에 조그맣게 남아있을 뿐이기에, 당시의 모습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상전벽해라고 할 수 있을 것이었다. 지금의 거대한 시가지는 한 순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닌, 당시의 수많은 이들의 노력이 더해진 결과물일 것이다. 때문에, 삿포로의 역사를 알아가는 것이 중요할 것이고, 이는 그저 삿포로시의 관광명소나 일견 오래된 듯한 근대건축물을 넘어선 삿포로시 시계탑의 새로운 가치의 발견으로도 이어질 것이었다.

 

 

디오라마 너머로는, 삿포로시 시계탑과 삿포로농학교, 그리고 그 모체가 되는 개척사가설학교(開拓使仮学校)의 역사와 함께, 당시의 학제와 교사 등 삿포로농학교에 대한 총체적인 내용과 당시의 시대상 등이 사진자료와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시간순으로 번호가 붙어져 있기 때문에, 순서대로 관람하게 되면 삿포로시 시계탑 뿐만 아니라 홋카이도의 역사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더할 수 있었다.

 

 

한편 2층은 시계탑 홀(時計台ホール)이라는 이름으로, 교내 행사가 이루어지던 당시의 강당의 모습을 복원한 것으로, 지금은 일반에 개방되어, 대관 또한 가능하다. 단상 정면에는 의자와 함께, 삿포로농학교 초대 교두(教頭)인 윌리엄 스미스 클라크(William Smith Clark)의 동상이 앉아 있었는데, 그 옆에 앉아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한편 2층에도 전시시설이 있는데, 홀의 가장자리에 현 삿포로농학교 연무장 건물이 삿포로시 시계탑으로 불리게 된 근원인 시계장치에 대한 설명을 볼 수 있었다. 현재의 명칭이 무색하게, 본래 이 건물이 지어졌을 당시에는 시계 대신 종이 걸려 있었는데, 시간을 알리는 점에서는 동일했으나, 정확성 등의 문제가 제기되어 1881년 미국 하워드 사에서 제조된 시계를 설치하여 지금에 이른다. 다만, 이 당시 설치된 시계 장치는 일반에 공개되어 있지 않고, 대신 1998년부터 작동을 시작한 또 다른 시계 장치가 전시되어 있다. 이 외에도, 여러 사진 및 영상 자료와 함께, 시계장치의 작동원리 및 시계탑 부분의 구조 및 타 지역의 시계탑 등 시계탑과 시계에 대하여 총제적으로 알아갈 수 있었다.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들어갈 때는 보지 못하였던 눈사람이 보였다.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종종 외국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눈사람 옆에서 사진을 찍고는 하였다. 분명히 이 앞을 지나쳤을 텐데, 왜 보이지 않았을까를 생각했다. 눈사람과 함께, 삿포로시 시계탑을 배경으로 한 사진은 이 계절에만 볼 수 있는 소중한 풍경이자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을 텐데. 그래서 발걸음을 돌려, 셔터를 눌렀다. 도쿄에는 눈이 귀하고, 눈사람은 더욱 보기 힘들기에, 늦게나마 시야에 들어와서 다행이었다. 

 

 

삿포로 시가지에 삿포로시 시계탑과 같은 근대 건축물이 다수 남아 있는 것은 이 도시 자체가 일본의 근현대사와 깊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월이 흐름에 따라 여러 형태로 변모해 온 도시의 역사를 함께 알아보는 과정은 여행의 깊이를 더할 수 있을 것이다. 삿포로시 시계탑은 삿포로의 중심지에 위치해 있으면서, 인근에 위치한 홋카이도청 구 본청사(北海道庁旧本庁舎) 건물과 함께, 홋카이도의 역사 자료를 충실히 전시하고 있으니, 시간이 된다면, 기념사진 한 두 장을 찍는데 그치기보다는 직접 안으로 들어가, 건물의 전모에 대하여 상세히 알아보는 것도 의미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폭설이 온 날 홋카이도 신치토세 공항(新千歳空港)에서 겪은 일

하네다 공항 1터미널에 도착했을 때의 첫인상은 여느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다만 나 혼자만이 이 곳에서 대단히 지쳐 있다고 느꼈지만, 이는 대단한 착각일 뿐이다. 공항에서는 항공편

zuhausekotan.tistory.com

 

 

삿포로에서 노보리베츠까지 가는 길 - 폭설은 그쳤지만 가는 길은 험난했다

삿포로에서 노보리베츠로 가기로 한 날, 하늘은 폭설 때문에 공항에 발이 묶여 있어야 했던 전날의 폭설이 무색하게 다시 눈을 뿌렸으나 해가 뜨면서 이내 맑은 하늘을 드러내었다. 종일토록 멈

zuhausekotan.tistory.com

 

 

일본 유수의 유황온천 노보리베츠온천의 역사와 함께한 유서깊은 료칸, 노보리베츠온천 다이이

홋카이도(北海道) 노보리베츠온천(登別温泉) 다이이치타키모토칸(第一滝本館)은 노보리베츠 온천가에서도 제법 좋은 입지에 자리를 잡았다고 할 수 있다. 뒤로는 지고쿠다니(登別地獄谷)가 도

zuhausekotan.tistory.com

 

 

노보리베츠온천 다이이치타키모토칸(登別温泉 第一滝本館)에서 즐기는 초호화 카이세키(会席)

노보리베츠 온천가 북쪽, 지고쿠다니에서 가장 가까이 붙어 있는 대형 료칸인 다이이치타케모토칸(第一滝本館). 이 날 예약한 플랜은 석식으로 카이세키가 포함되어 있었고, 그 중에서도 제법

zuhausekotan.tistory.com

 

 

노보리베츠온천 타키모토칸에서 보낸 짧았지만 꿈같던 시간, 그리고 다시 삿포로로

폭설이 온 날 홋카이도 신치토세 공항(新千歳空港)에서 겪은 일 하네다 공항 1터미널에 도착했을 때의 첫인상은 여느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다만 나 혼자만이 이 곳에서 대단히 지쳐 있

zuhausekotan.tistory.com

 

 

눈으로 덮힌 길을 따라 삿포로 가든 파크(サッポロガーデンパーク)를 향해 걷다.

젠카이노 폭설이 온 날 홋카이도 신치토세 공항(新千歳空港)에서 겪은 일 하네다 공항 1터미널에 도착했을 때의 첫인상은 여느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다만 나 혼자만이 이 곳에서 대단

zuhausekotan.tistory.com

 

 

삿포로 가든 파크(サッポロガーデンパーク) 도착, 일본 근대사의 일면을 볼 수 있는 삿포로 맥주

젠카이노 폭설이 온 날 홋카이도 신치토세 공항(新千歳空港)에서 겪은 일 하네다 공항 1터미널에 도착했을 때의 첫인상은 여느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다만 나 혼자만이 이 곳에서 대단

zuhausekotan.tistory.com

 

 

삿포로 가든 파크(サッポロガーデンパーク)와 삿포로 맥주원(札幌ビール園) 관광, 그리고 잊지

젠카이노 폭설이 온 날 홋카이도 신치토세 공항(新千歳空港)에서 겪은 일 하네다 공항 1터미널에 도착했을 때의 첫인상은 여느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다만 나 혼자만이 이 곳에서 대단

zuhausekotan.tistory.com

반응형